2025. 7. 20. 15:31ㆍ카테고리 없음
산·계곡·동굴·바다 ‘4방미인’ 동해시
시원스러운 속도로 달려왔더니, 시원한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동쪽 바다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도시. 동해.
강원도 동해시 추암해변의 능파대(凌波臺). 능파대는 바닷가에 솟은 산과 바위들을 통칭해 이르는 말이다. 조선 시대 강원도 체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의 ‘자연 절경이 마치 미인의 걸음걸이 같다’고 해서 ‘능파대’라 이름 붙였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추암해변의 능파대(凌波臺). 능파대는 바닷가에 솟은 산과 바위들을 통칭해 이르는 말이다. 조선 시대 강원도 체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의 ‘자연 절경이 마치 미인의 걸음걸이 같다’고 해서 ‘능파대’라 이름 붙였다. 김홍준 기자
동해역에 KTX가 다니기 시작한 지 만 5년. 최고 시속 250㎞로 2시간 30분. 출발 서울역은 36도. 도착 동해역은 26도. 별천지임을, 피부로 먼저 느낀다.
눈대중으로 느끼는 동해는 좁다. 180㎢로 강원도에서 속초(105㎢) 다음으로 좁은 땅.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그마저 꼴찌에서 두 번째다. 그래도 있을 게 다 있다. KTX 정차역이 두 곳이나 있다. 동해역과 묵호역. 추암역에는 동해선 열차 누리로가 선다. 올망졸망 도로와 이어져 기다리는 산과 계곡, 동굴과 바다. 작은 도시에 모여 있어 넉넉하게 모두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제법 너르니, 반전의 묘미와 역전의 쾌감이 밀려온다. 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그런 곳으로 흩어졌다. 차마 더위가 쫓아가지 못할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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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분 개방 뒤 2021년 전면 개방된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 베틀바위는 3시간이면 넉넉히 왕복 산행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장가계'로 부르기도 한다. 김홍준 기자
2020년 부분 개방 뒤 2021년 전면 개방된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 베틀바위는 3시간이면 넉넉히 왕복 산행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장가계'로 부르기도 한다. 김홍준 기자
1977년 국민관광지 1호 뽑힌 무릉계곡
천 안쪽부터 들어가는 공그르기 바느질처럼, 발길은 동해 깊은 곳부터 꿰맞추는 게 낫다. 그래서 두타산(1354m)이다.
휴휴(休休). 이승휴(1224~1300)의 자다. 『고려사』는 이승휴를 ‘두타산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를 표현하는 말들의 뜻은 그가 두타산에 들어가 평온한 삶을 찾으려 했다는 것. 말년에 두타산에서 『제왕운기』를 쓰며 무릉계곡을 거닐었단다. 무릉계곡은 1977년에 선정된 국민관광지 1호이자 2008년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이다. 무릉반석에는 1000명이 앉아 있어도 될 정도의 너른 바위다. 옛 묵객들이 새긴 석각이 수없다. 주중 많은 비로, 4㎞ 무릉계곡은 소리부터 찰랑거리겠다.
그래픽=이현민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dcdcdc@joongang.co.kr
선릉후곡. ‘능선 먼저 오른 뒤에 계곡’이라는 등산인들이 만든 말이다. 능선 상의 베틀바위를 먼저 찾았다. 누군가는 “중국 장가계(張家界·장자제) 부럽지 않다”라든지, 더 나아가 “한국의 장가계”라는 표현을 쓴다. 예단할 수 없으니 베틀바위를 찍고 내려오는 경기도 안성의 3대 여성팀에게 물어봤다. 손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스케일이 달라요. ‘리틀 장가계’라고 해야 맞을 듯해요. 그래도 안 가면 후회할 거예요.”
이승휴의 자를 딴 휴휴명상쉼터에서 1시간이면 된다. 쭉쭉 뻗은 기둥 여럿이 하나의 벽으로 합쳐져 벼락 치듯 하늘로 향하고 있다. 생긴 게 꼭 베틀이라서 붙은 이름. KTX 동해역 개통과 짜맞춘 듯, 같은 해인 2020년 개방했다. 베틀바위 주변은 석회암이 많다. 그래서 회양목이 잘 자란다. 언제나 회분홍색의 바위와 늘 푸른 나무의 조화. 오묘하다. 두타산성을 스치고 지나 무릉계곡으로 떨어져 품 팔았던 발을 달래는 이들이 많다.
강원도 동해시 추암해변의 촛대바위. 애국가 1절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석회암인 촛대바위는 풍화로 인해 안전진단을 받은 적도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추암해변의 촛대바위. 애국가 1절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석회암인 촛대바위는 풍화로 인해 안전진단을 받은 적도 있다. 김홍준 기자
베틀바위의 기둥 하나가 바다에 떨어져 서 있는 것일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 영상으로 만나는 애국가 1절 이 부분에 나오는 바위가 동해 추암 촛대바위다. 원래는 3개였단다. 100여 년 전 벼락을 맞아 2개가 무너졌다. 남은 하나도 붕괴 우려로 안전진단을 받을 정도다. 그 아래는 바위 밭이다.
파도와의 쉼 없는 부딪힘. 수만 년간 거추장스러웠던 겉은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알맹이가 원추형으로 남았다. 이런 석회암 기둥을 ‘라피에’라고 부른다. 고쳐 말하면, ‘밭’보다는 바위의 ‘숲’이다.
강원도 체찰사였던 한명회(1415~1487)가 요샛말로 ‘깜놀’ 했나보다. “흡사 사람이 누운 듯, 비스듬히 선 듯하고, 호랑이가 꿇어앉은 것 같기도, 용이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해 천태만상이다. 가히 조물주의 작품”이라고 하더니 “추암이 뭐냐, 능파대(凌波臺)로 불러라”고 했단다. 능파는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을 뜻한다. 능파대 앞에 고고한 정자가 있다.
강원도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출렁다리. 오밀조밀 모인 바위들은 능파대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출렁다리. 오밀조밀 모인 바위들은 능파대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대나무숲 터널. 이곳의 문화관광해설사는 "관광객이 좋종 놓치는 핫플"이라고 소개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대나무숲 터널. 이곳의 문화관광해설사는 "관광객이 좋종 놓치는 핫플"이라고 소개했다. 김홍준 기자
공민왕은 낙향하겠다는 신하를 말릴 수 없었다. 마침내 노인이 동쪽으로 향했으니, 왕은 그를 심동로(沈東老·1310~?)라 불렀다. 삼척 심씨의 시조가 되는 심동로가 삼척 북평을 가로질러 닿은 곳이 추암해변. 해암정(海巖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소실되고 중수돼 현재에 이르렀는데,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말만 잘하면 정자 앞에서 뒤편을 관통하는 멋진 사진을 건져준다. 동해 얘기하다가 삼척으로 빠졌다. 이유가 있다.
동해는 원래 없던 곳이다. 1980년 4월 북쪽 명주군 묵호와 남쪽 삼척군 북평이 합쳐 올해 만 45세. 여느 통합 지역처럼 갈등과 논란이 있었다. 도시 이름만 해도 그렇다. 남해에 남해군이 있듯이 앞바다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역사와 전통은 찾아볼 수 없다”는 반대가 있었다. 해양도시로의 발돋움이라는 ‘미래’의 의미를 담아 설득했다. 서해 이름을 가진 지역은 왜 없느냐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을 터. 인천 서구가 새 이름 후보 중 하나로 ‘서해구’를 내세운 상태다.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굴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에 위치한 천연 동굴이다. 황금박쥐(학명 붉은박쥐)가 발견되면서 천곡황금박쥐동굴이란 이름도 붙었다. 주로 여름에 보이는 황금박쥐는 지난 4월에 나타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총 길이 1510m 중 810m를 관람할 수 있다. 기온은 15도 안팎으로, 한여름에도 긴 팔을 입는 게 좋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굴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에 위치한 천연 동굴이다. 황금박쥐(학명 붉은박쥐)가 발견되면서 천곡황금박쥐동굴이란 이름도 붙었다. 주로 여름에 보이는 황금박쥐는 지난 4월에 나타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총 길이 1510m 중 810m를 관람할 수 있다. 기온은 15도 안팎으로, 한여름에도 긴 팔을 입는 게 좋다. 김홍준 기자
여하튼 신생 동해시는 주거 안정을 위해 천곡동에 신시가지를 조성했다. 1991년 시영아파트 굴착 공사 중 수상한 동굴이 튀어나왔다. 천곡황금박쥐동굴의 발견이었다.
앞서 밝혔거니와, 서울은 36도. 그런데 천곡동굴은 15도다. 총 길이 1510m 중 개방된 810m를 다니려면 얇은 긴 소매 옷은 필수다. 천곡동굴은 국내 유일의 도심 천연동굴이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난 석주의 이름은 '수백 년의 기다림.' 이렇게 동굴 속 모습에 붙은 이름들의 뜻을 새기며 한 바퀴 돌면 30분이다. 행운의 상징인 천연기념물 황금박쥐(학명 붉은박쥐)가 동굴에 출현하는 때가 이즈음인 여름이다.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한섬해변의 한적한 아침. 한 여성이 파도의 포말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한섬해변의 한적한 아침. 한 여성이 파도의 포말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한섬해변의 액자 울타리 야경. 한섬해변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감성 해변'으로 뜨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동해시 한섬해변의 액자 울타리 야경. 한섬해변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감성 해변'으로 뜨고 있다. 김홍준 기자
7만명 예상 도째비페스타 밤에 더 재미
여름이면 동해(바다). 지난해 ‘7말 8초’(19.2%)에 동해안(25.1%)으로 떠난다는 휴가객이 가장 많았다(한국교통연구원). 이미 지난 9일 동해시의 6개 해수욕장이 동시 개장했다. 망상해수욕장은 무릉계곡에 이은 국민관광지 2호. 해변 길이가 2㎞에 이른다. 이렇게 소문난 곳도 있지만, 소리소문 없이 즐길만한 해변도 여럿이다.
한국갤럽은 여름 노래 1위로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를 꼽았다. 빌보드 선정 여름 노래 1위는 비치보이스의 ‘서핑 유에스에이.’ 이 노래들을 듣기 딱 좋은 대진해변. 서핑의 신성지다.
해파랑길 33코스를 지나며 바라보는 한섬해변은 한적한 비경이다. 천곡동굴과 가깝다. 아직은 아는 사람만 찾는 곳이지만, '감성해변'이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에서 뜨고 있다.
동해 묵호항의 도째비스카이밸리의 도째비스카이워크와 해랑전망대. 입장료 3000원인 59m 높이의 유리 바닥 스카이워크 ‘하늘산책로’는 발 아래로 펼쳐진 푸른 동해를 조망할 수 있다.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도째비페스타’가 바다에 펼쳐진 해랑전망대에서도 열린다. 김홍준 기자
동해 묵호항의 도째비스카이밸리의 도째비스카이워크와 해랑전망대. 입장료 3000원인 59m 높이의 유리 바닥 스카이워크 ‘하늘산책로’는 발 아래로 펼쳐진 푸른 동해를 조망할 수 있다.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도째비페스타’가 바다에 펼쳐진 해랑전망대에서도 열린다. 김홍준 기자
동해 묵호항의 해랑전망대. '검을 묵(墨)'을 이름 앞에 쓰는 묵호의 바다는 유난히 짙푸르다. 김홍준 기자
동해 묵호항의 해랑전망대. '검을 묵(墨)'을 이름 앞에 쓰는 묵호의 바다는 유난히 짙푸르다. 김홍준 기자
어달해변의 바다는 유난히 짙푸르다. 여기는 묵호 아닌가. 바다 색이 짙어서 묵(墨)을 쓴단다. 어달해변 근처 도째비골스카이밸리는 깊고 푸른 밤을 선사한다. 20일까지 도깨비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여름 축제 ‘도째비페스타’가 열린다. 2022년부터 4회째. 도째비는 도깨비의 강원도 사투리다. 올해 축제에는 7만명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동해시 관계자는 “해지거들랑 오세요”라며 ‘깊고 푸른 밤’의 의미와 재미를 새겨줬다.
이쯤 되면 동해(시)라면 바다다. ‘역전 앞’처럼 종종 겹말로 잘못 쓰는 ‘동해 바다’는 '진짜 동해(시) 바다’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말. 해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뜻이다. 배경은 의미심장하지만, '고래사냥(한국갤럽 여름 노래 8위)' 가사도 그렇지 않은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해파랑길에서 바라본 강원도 동해시 한섬해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김홍준 기자
해파랑길에서 바라본 강원도 동해시 한섬해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김홍준 기자
동해는 홍천과 함께 강원관광재단이 선정한 7월 여행지다. 강원관광재딘은 올해와 내년을 강원 방문의 해로 내걸었디. 안쪽 ‘리틀 장가계’부터 바깥쪽 ‘깊고 푸른 밤’까지. 작은 도시가 알차다. 단단히 알맹이만 남은 능파대처럼. 그래서 가성비 좋은 여행지라는 평도 많다. 주중 많은 비로 걱정이라면 이번 주말 날씨는? 서울역은 흐리고 비. 동해역은 비 온 뒤 맑음. 이후 폭염.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2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