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3. 14:46ㆍ카테고리 없음
교도통신 비문 내용 “바꿀 것”보도…정의연 “사실 아니다”
일본의 방해에도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해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이 22일(현지시각) 설치됐다. 소녀상이 세워진 스틴티노시의 시장이 일본 정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녀상에 적힌 비문 내용의 수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소녀상 설치에 참여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유럽인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도 유명한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는 이날 설치된 소녀상 주변에서 제막식을 열었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콜롬보 해변 인근에 자리하게 된 소녀상을 옆에 두고 현지 합창단이 부르는 민요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정의연 23일 보도자료를 내어 제막식엔 사르데냐 섬에서 선출된 여성 시장들을 비롯한 정치인과 지역의 여성·인권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소녀상과 함께 설치된 비문엔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독일, 필리핀 등 여러 나라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라고 한국어와 이탈리아어와 영어 등으로 적혔다.
정의연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기도 한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 시장이 연설을 통해 “소녀상은 전 세계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성폭력의 원인을 상기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주이탈리아 일본 대사관 등을 동원해 소녀상 설치에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전날인 21일(현지시각)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시장이 “(비문에 한국 시민단체의) 일방적 주장이 적혀 있다. 문구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발레벨라 시장이 “위안부 문제에 공부가 부족했다. 일본만 비판할 의도는 없었다”며 “한일 양국의 입장을 비문으로 새로 만들겠다“고 밝혔다고도 보도했다.
그러나,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발레벨라 시장과 면담해 확인해 봤지만 그는 비문 문구를 바꾸겠다고 한 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며 “일본 기자와도 직접 인터뷰한 적이 없다고 (발레벨라 시장이) 말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다각도로 이탈리아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주이탈리아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소녀상 건립과 관련해 ”다양한 (이탈리아) 관계자에게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고,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 동시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현지 지역신문인 루니오네 사르다도 소녀상 제막식을 이틀 앞둔 지난 20일 스즈키 사토시 주이탈리아 일본 대사가 스틴티노시를 방문해 발레벨라 시장을 만나 제막식 연기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스즈키 대사가 일본이 과거 범죄에 대해 사과했다며 소녀상 비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우리 외교부는 “관련 동향을 주시하면서 필요하면 적절한 대응을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며 “정부의 기본 입장은 해외 소녀상 등의 설치는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추모·교육 차원에서 해당 지역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움직임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이탈리아 한국 대사관 쪽은 한겨레에 “현재까지 일본대사관이나 스틴티노 시청 쪽에서 대사관을 접촉한 바 없다”고 말했다.
스틴티노 소녀상은 유럽에서는 독일 베를린 이후 공공부지에 두번째로 설치되는 것이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공립 도서관 앞에 해외에서 처음으로 소녀상이 세워진 이후 14번째다.
일본 정부가 세계 각지에 있는 소녀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베를린의 소녀상은 설치 4년 만에 철거 위기에 놓였다. 소녀상에 대한 행정처분 권한이 있는 베를린 미테구청은 지난 18일 “(소녀상은) 특별 허가가 한 차례 연장됐고 이후에는 문구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용인하는 상태다. 이 협의가 실패해 더 이상 허가를 연장할 수 없다”며 철거를 공식화했다. 구청은 “2024년 9월 용인 기간이 만료되면 코리아협의회가 구청의 철거 요청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문구와 관련해 구청이 제대로 협의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문구 수정을 비롯해 협의할 준비가 돼있다”고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