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3. 15:00ㆍ카테고리 없음
지지율 바닥, 김건희 의혹, 무능 등
국정 핵심 현안들 ‘안보’로 눈가림
남북이 ‘나토-러시아 대리전’ 위험
‘국익 외교’ 벗어난 외곬 자승자박
윤석열 대통령이 10월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하는 나라입니다.
폴란드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한국의 우수한 무기를 지원할 의향이 있는지, 한국도 직접 군인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그럴 의향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저희가 인도적 측면에서 그동안 쭉 지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러-북 협력에 기해서 북한이 특수군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한다면 저희가 그 단계별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또 한반도 안보에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해놓고 시행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원칙으로서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에서도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나갈 수 있습니다.”
폴란드 기자의 질문과 연결하면 ‘북한군 활동 여하에 따라 무기를 지원하고 파병할 의향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무시무시한 얘깁니다.
국가원수 역할 할수록 안보 나빠져
하지만 저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더 무서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당한 얼굴에서 ‘내가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부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불과 사흘 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마주 앉아 화난 표정을 짓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닥 수준의 국정 지지율, 절대적인 여소야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한동훈 대표와의 갈등은 다 잊은 듯했습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중요한 외교·안보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10월28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통화했습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통화했습니다. 10월29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습니다. 두 정상은 대표단과 특사를 교환하고 양국 간 정보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10월30일에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에게 우리 정부가 가진 정보와 판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입에 전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도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이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김건희 여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목소리가 담긴 녹음을 공개했습니다. 대통령실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고, 명씨가 김영선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리스크’ ‘명태균 리스크’를 넘어갈 수 있을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아무튼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국가의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 역할에 치중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의 외교·안보 상황은 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만약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군대를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남과 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을 치르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남북 전쟁은 순식간에 한반도로 옮겨붙을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국제 정세의 변화는 특정 국가나 지도자 한두 사람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러시아에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러시아를 궁지로 몬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에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북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파병 이후 국제 정세가 요동치며 세계는 전보다 훨씬 더 위험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높아가고 있는 것도 북한의 책임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북한을 러시아 쪽으로 몰아붙인 우리와 미국에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한·미·일-북·중·러 대결 구도만 강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10월2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때 남북 정상회담 밀사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일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때는 국가정보원장을 했습니다.
“저의 남북대화 경험에 의한 바로는 북한은 남북 간 교류협력하며 미국이 손을 잡아주면 친미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으로부터 두가지 유훈을 받았습니다. 첫째, 미국과 수교, 체제안전보장. 둘째,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를 통해서 경제 발전. 제가 김정일을 만났을 때 그는 지리적 역사적으로 일·중·러는 한반도를 침략, 식민지화하려 했지만, 미국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런 적도 없고 생각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일·중·러를 싫어했고 오히려 미국을 좋아했습니다.”
“한-미 간 정책적 판단의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미-중의 극단적 대립 속에 우리가 외교를 잘못해서 친미국가의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완전한 친러국가로 몰았습니다.”
저는 박지원 의원의 시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외교통상부 북미국장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러시아대사를 지낸 전문가입니다. 위성락 의원이 10월2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의견을 밝혔습니다.
“러시아·북한 동맹과 파병은 탈냉전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 이후 서방 진영과 러시아 사이의 수많은 작용과 반작용에 따른 결과다. 그사이 캠프 데이비드(지난해 한·미·일 정상회의)가 있었고, 한-미 핵협의그룹(NCG, Nuclear Consultative Group)도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무기가 필요해 북한 무기를 얻어 썼고, 그러다 보니 동맹이 돼 병사가 필요해 파병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진공 속에서 지금 일들이 벌어진 것처럼 말한다. 그렇게 인식하면 적절한 대처가 나올 수 없다.”
“지금까지 벌어진 여러 정황을 상호작용(interaction)의 산물이라고 이해해야 냉정한 해법이 나온다. (그런 인식 없이) ‘파병하면 우리도 무기 주고 대응하면 돼’ 하면 근원적 해결 전략을 찾을 수 없다. 한반도 주변의 역학이 크게 변하고 있는 순간에 있다. 그리고 이 구도는 우리를 수십년 옥죌 가능성이 크다.”
저는 위성락 의원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사태의 한복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서른다섯차례 외쳤습니다. 자유라는 이념을 국제 무대까지 확장했습니다. ‘이념 외교’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군사력 강화의 진짜 목적은
어떻습니까?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벌어진 한·미·일 준군사동맹, 남북 관계 파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가 모두 취임사에 예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외교’는 우리의 전통적인 ‘국익 외교’ 노선에서 크게 이탈한 것입니다. 족보에 없는 것입니다. 이승만·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한민국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익 외교’를 대외 관계의 중심 가치로 삼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외교’ 때문에 한반도 정세는 점점 더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이른바 보수 언론과 논객들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는 10월29일치 신문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군사력을 키우고 각종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또는 전투용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고상두 연세대 명예교수는 문화일보 10월29일치에 ‘러시아 격변사와 슬기로운 북방외교’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영원한 것은 국익이다.”
“러시아에 대한 실용적 포용을 하기 위해 북방외교를 재가동할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러·북 밀착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에게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대형 사고를 쳐놓고도 한기호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문자 내용에서 무엇이 문제냐”고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국방부와 대통령실은 정부의 입장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이 한기호 의원과 과연 얼마나 다른지 의심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